장을 보고 돌아와 냉장고에 과일을 정리할 때, 우리는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과일, 미리 씻어서 넣는 게 좋을까? 아니면 먹기 직전에 씻어야 할까?" 보기에는 깨끗해 보여도 과일 껍질에는 흙, 농약, 유해 세균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바로 냉장고에 넣거나, 혹은 씻은 뒤 젖은 상태로 보관해 과일이 금방 상해버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특히 장기 보관이 필요한 사과, 포도, 방울토마토 같은 품목은 보관 전 세척 여부에 따라 신선도 유지에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채소와 과일을 세척하고 보관하는 순서에 대한 올바른 기준과, 농약 제거법, 수분 제거의 중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본다.
본론 –1. 채소와 과일 올바른 보관법
1) 미리 씻는 건 오히려 신선도를 떨어뜨린다
과일을 씻은 후 젖은 상태로 보관하면 껍질에 남은 수분이 곰팡이와 세균 증식을 유도하게 된다. 특히 포도나 블루베리처럼 수분에 약한 과일은 며칠 내에 흐물거리거나 곰팡이가 피기 쉽다. 실제로 서울시 식품의약품안전센터 조사에 따르면, 과일을 미리 씻어서 보관했을 때 냉장 보관 3일 이후 곰팡이 발생률이 35%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과일은 먹기 직전에 씻는 것이 원칙이며, 보관 전 세척은 오히려 과일의 수명을 줄이는 행동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세척 과정에서 표면의 자연 보호막이 사라지기 때문에 외부의 산소, 수분, 곰팡이 포자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의 경우 껍질에 있는 자연 왁스층이 보호막 역할을 하는데, 이를 제거하면 수분 증발과 부패 속도가 빨라진다.
2) 예외적으로 미리 씻어야 하는 경우
그러나 흙이 많이 묻은 감자, 고구마, 상추 같은 채소는 흙을 그대로 냉장고에 넣는 것이 오히려 교차오염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흐르는 물에 1차 세척한 후 물기를 말리고 보관하는 것이 좋다. 특히 흙 속에는 클로스트리디움 등 토양 세균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이는 다른 식재료에 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 이때도 완전히 건조한 후 보관하는 것이 핵심이다.
부엌 내 보관 공간의 위생상태도 중요한데, 채소와 과일이 함께 닿는 수납공간을 정기적으로 닦고 소독하지 않으면 오염이 반복될 수 있다. 따라서 채소 전용 서랍이나 상자는 별도로 위생 상태를 체크하고, 식재료가 서로 닿지 않도록 간격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3) 농약 제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흐르는 물로 30초 이상 세척하는 것만으로도 상당량의 농약 성분이 제거된다. 그러나 잔류 농약 제거를 위해 더 꼼꼼한 처리가 필요한 경우, 식초 희석액(물 1리터당 식초 1~2큰술) 또는 베이킹소다 용액(1리터당 1 티스푼)에 5분정도 담가 놓은 뒤 다시 흐르는 물로 깨끗이 씻어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너무 오래 담가두면 과일의 식감이 떨어지고 영양 성분이 손실될 수 있으므로 시간 조절이 중요하다. 또한 잔류 농약 제거에 있어 '식용 탄산수나 전해수'를 활용한 상업용 세정액도 최근 관심을 받고 있다.
더불어, 유기농 과일이라고 해서 세척을 생략하면 안 된다. 유기농 재배 과정에서도 비료나 흙 오염 가능성이 있고, 운송 및 진열 과정에서 다양한 오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유기농 제품이라도 반드시 세척은 필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4) 수분 제거는 왜 중요할까?
수분이 남아 있으면 세균 번식과 곰팡이 발생이 빨라진다. 세척 후에는 키친타월, 전용 탈수망, 또는 망에 걸어 자연 건조하는 방식으로 수분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포도나 방울토마토처럼 한 송이로 묶인 과일은 낱개로 나누어 키친타월에 싸거나 밀폐 용기에 키친타월을 깔고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는 수분을 흡수해 내부 습도를 조절하고, 곰팡이 생성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특히 냉장고 내부는 의외로 습도가 높은 환경이다. 내부 온도는 낮지만 수분이 응결되어 벽면이나 보관 용기에 맺히기 쉬워, 과일에 닿으면 신속하게 부패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세척 후 건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그 과정에서 손질까지 마쳐두면 조리나 섭취 시 편리함도 높아진다.
본론 –2. 과일별 세척 및 보관 팁
● 사과/배: 껍질째 먹는 경우 세척 후 물기를 제거하고 신문지로 감싼 뒤 보관
● 포도/블루베리: 씻지 않고 보관 → 먹기 전 세척, 낱개 분리 시 수분 관리 필수
● 딸기: 쉽게 상하기 때문에 꼭지째로 보관, 먹기 전 흐르는 물에 짧게 세척
● 바나나: 냉장 보관 금지 / 상온에서 햇빛 피해서 종이봉투에 보관 시 오래 유지됨
● 상추/잎채소류: 1차 세척 후 물기 제거, 밀폐용기 + 키친타월 깔아 보관
● 키위: 껍질이 얇고 수분이 많아 잘 무르므로 씻지 않고 보관하며, 먹기 직전 부드럽게 문질러 세척
● 오렌지/자몽 등 감귤류: 껍질이 두꺼워 세균이 덜 침투하지만, 칼을 댈 경우 오염될 수 있으므로 세척 후 닦아 보관
● 멜론/참외: 겉면이 울퉁불퉁해 세균이 잘 남아 있음. 흐르는 물에 솔로 문질러 씻고, 완전히 건조 후 보관
● 체리: 수분에 매우 약하므로 씻지 않고 보관, 먹기 전 빠르게 헹궈야 신선도 유지
● 망고/파파야 등 열대과일: 대부분 상온 보관이 적합하며, 냉장고에 넣을 경우 향과 당도가 떨어질 수 있음 껍질째 먹는 경우 세척 후 물기를 제거하고 신문지로 감싼 뒤 보관
👉 보관 용기와 환경도 중요하다
과일 보관 시 흔히 밀폐 용기를 사용하지만, 통풍이 안 되는 환경은 습기와 곰팡이 증식을 가중시킨다. 대신 투명한 뚜껑이 있는 통풍 가능 용기나, 과일 전용 채반, 김치 보관용 김치냉장고 서랍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과일은 평균 5~10도 사이의 저온 보관이 가장 적절하며, 일부 과일은 서로의 호르몬 가스(에틸렌)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으므로 분리 보관할 필요가 있다.
📌 예: 바나나는 사과와 함께 보관하면 숙성이 빨라지며, 이로 인해 조기 부패가 유발될 수 있다.
마무리
무심코 냉장고에 넣은 씻지 않은 과일이 오히려 오염을 키울 수도 있고, 반대로 씻은 뒤 수분이 남은 채로 넣은 과일은 금방 상해버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과일마다 특성과 조건이 다르며, 그에 따라 세척과 보관 순서를 맞추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일을 세척하는 방법, 수분을 제거하는 방식, 보관 용기의 선택, 온도와 공간까지—이 모든 요소가 함께 작용해야 진정한 ‘신선 보관’이 가능하다. 냉장고 안의 위생, 식재료의 신선도, 그리고 가족 건강은 작은 습관 하나에서 출발한다.
오늘 장을 보고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기 전,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이 과일, 지금 씻어야 할까? 아니면 나중에?
과일의 신선함은 단지 보관법보다도, 바로 그 ‘순서’에 달려 있다.